갑작스러운 연락과 정신없던 시작
한밤중에 걸려 온 전화 한 통에 온 가족이 멈춰버린 느낌이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웰다잉 교육이니 인생노트니 하는 이야기들이 뉴스에 나오길래 언젠가 우리 집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은 막연히 했었다. 하지만 막상 닥치니 그런 교육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부모님은 평소 시신기증을 말씀하시기도 했고, 거창한 장례는 원치 않으셨기에 우리는 처음부터 무빈소 장례를 고려했다. 아무런 대비 없이 맞이한 죽음 앞에서 상조 서비스 업체들을 급하게 검색했는데,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상담원들의 목소리가 너무 사무적이라 도리어 더 당황스러웠다.
회천농협장례문화원에서의 시간과 현실적인 고민
결국 집에서 멀지 않은 회천농협장례문화원을 알아보고 연락을 취했다. 빈소를 차리지 않는 무빈소 장례로 진행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생각보다 간결하게 절차가 안내되었다. 사실 무빈소 장례라고 하면 조문객을 받지 않으니 비용이 아주 적게 들 거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수의나 관, 운구 비용 등이 꽤 촘촘하게 책정되어 있었다. 대략적으로 계산해보니 최소 몇백만 원 단위의 예산은 필요했다. 조문객이 없으면 음식을 준비할 필요가 없으니 한결 수월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고인을 모시는 기본 절차 하나하나를 직접 결정해야 하는 무게감이 훨씬 크게 다가왔다. 영정액자는 어디서 출력해야 하는지, 사진은 어떤 걸 써야 하는지 같은 사소한 것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조문객 없는 정적 속에서 느낀 감정
빈소를 차리지 않으니 장례식장이 평소보다 훨씬 고요했다. 보통은 시끌벅적한 조문객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문상객 맞이하느라 정신없어야 할 곳인데, 우리 가족만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이게 맞나 싶었다. 나중에 정왕공설묘지 쪽으로 이동해서 유골함을 안치할 때까지도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지 않으니 슬픔을 나눌 대상이 없었고, 우리끼리 서로를 위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장례 후에 어떻게 인사를 전해야 할지, 주변에 소식을 알리지 않은 친척들에게 나중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준비되지 않은 마음과 여전히 남는 물음표
돌아보면 상조 서비스라는 게 사실은 보여주기 식의 절차를 대신 해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물론 전문가들이 알아서 염습이나 운구 과정을 챙겨주니 큰 실수는 없었지만, 고인의 생애를 정리하고 애도하는 시간은 온전히 가족의 몫이었다. 웰다잉에 대해 그토록 공부하고 준비한다 해도 막상 죽음의 무게는 측정할 수 없는 모양이다. 시신기증을 하겠다고 하셨던 부모님의 뜻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고 화장을 택한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마음 한구석에 짐으로 남는다. 어떤 게 정말 옳은 선택이었을까. 장례를 마친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찾지 못한 채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마주하는 시간
이제는 장례 절차 그 자체보다, 남겨진 물건들을 정리하는 게 더 큰일이 되었다. 옷장 속에 가득한 물건들,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서류들. 이런 것들을 버릴지 보관할지 결정하는 과정이 장례보다 더 길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누군가는 인생노트를 쓰며 죽음을 미리 준비하라고 하지만, 막상 닥친 현실 앞에서 그런 기록들이 얼마나 힘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날따라 날씨가 어땠는지, 꽃바구니를 들고 오던 길에 바람이 어떻게 불었는지 같은 사소한 기억들만 유독 선명하게 남았다. 어쩌면 장례라는 건 그저 곁에 있던 사람의 빈자리를 조금씩 익혀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무빈소 장례의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나오더라고요. 특히 영정사진 준비하는 과정에서 꼼꼼하게 생각해야 할 게 많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