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걸려 온 전화 한 통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평소에 죽음이라는 단어를 일상과 동떨어진 것처럼 치부하며 살았는데, 막상 닥치니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친 건 슬픔보다는 당장 무엇을 입고 가야 할지였다. 3일장이라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더라. 장례식장으로 달려가면서도 검정색 옷이 충분한지, 구두는 너무 튀지 않는지 계속 신경이 쓰였다. 결국 도착해서는 장례식장에 마련된 대여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여자 상복을 고르는 과정이 꽤 번거로웠다.
낯선 장례식장 복도에서의 짧은 고민
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상복을 대여하려고 보니 선택지가 거의 없었다. 보통 1박 2일에 5만 원에서 7만 원 정도 하는 대여비였는데, 사이즈가 애매했다. 다들 급하게 입다 보니 소매가 짧거나 품이 너무 커서 핀으로 대충 고정하고 입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 역시 허리춤을 집게로 집어 올린 채 3일 내내 서 있었는데, 이게 꽤나 불편하더라. 오동나무관을 직접 볼 기회는 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나누는 상조회사 이야기나 관의 재질에 대한 대화를 듣고 있자니 삶과 죽음이 이렇게나 비즈니스적으로 얽혀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묘한 기분이었다.
불편함이 당연해지는 3일간의 기록
옷이 불편하니 마음까지 더 조급해졌다. 걷는 내내 치마 밑단이 신경 쓰였고, 조문객들을 맞이할 때마다 옷매무새를 다듬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사실 슬픔에 집중하기도 바쁜데 겉모습을 계속 의식해야 한다는 게 이상하게 짜증이 났다. 나중에 보니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표정으로 앉아 있더라. 다들 처음 겪는 일은 아니겠지만, 매번 겪을 때마다 이 낯선 옷이 나를 더 위축되게 만드는 것 같다.
생각보다 비쌌던 장례 절차와 현실적인 벽
옆에서 다른 상주들이 상조회사 상담을 받는 걸 잠깐 들었는데 금액 단위가 생각보다 컸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상품 설명이 오가는 걸 들으면서, 단순히 사람을 보내는 일이 왜 이렇게 거대한 비용을 동반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공영장례 같은 제도도 있긴 하지만, 막상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그런 걸 일일이 따져보고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업체가 제시하는 대로 따라가게 되는 게 현실인 것 같다.
결국 남는 건 옷보다는 사람의 기억
3일이 지나고 상복을 반납하고 나니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집에 돌아와서 평소 입던 편한 옷을 입는데, 왜 그렇게 상복이 불편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건 단순히 사이즈의 문제가 아니라, 죽음이라는 무거운 상황을 억지로 형식 안에 끼워 맞추려던 강박이었을지도 모른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 상복을 벗어 던졌을 때의 그 해방감과 동시에 밀려오는 허망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음번에 또 이런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옷보다는 그저 그 사람을 추억하는 데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이번엔 그저 옷을 제대로 챙겨 입었는지, 예의에 어긋나지 않았는지 걱정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찼던 것 같다.

상복 사이즈 때문에 불편하셨다니,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적이 있어요. 핀으로 고정하는 것도 답답하더라구요.
옷이 불편해서 걷는 것도 신경 쓰이더라구요.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그런가, 작은 부분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