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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찾아온 이별 앞에서 허둥댔던 며칠

갑작스러운 연락과 막막함

지난달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새벽에 받았다. 평소 건강하셨던 편이라 마음의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막상 상황이 닥치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장례식장을 어디로 정해야 하는지, 국가유공자 예우는 어떻게 신청하는 건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대구파티마병원장례식장으로 모시기로 결정하고 나서도 그 뒤에 이어질 절차들이 너무 복잡해 보여서 손이 떨렸다. 주변에서는 다들 경황이 없을 테니 상조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마음 편할 거라고 조언했는데, 사실 상조 업체가 워낙 많다 보니 어디를 골라야 할지 고르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그냥 이름 좀 들어본 곳 위주로 검색하다가 국가유공자 장례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평소에 보훈상조나 이런 쪽 정보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들었던 장례 비용

상조 비용이라는 게 막상 닥치면 생각보다 꽤 크게 느껴진다. 우리가 선택한 상품은 기본적으로 무빈소로 진행할지, 아니면 최소한의 인원만 모실지 고민하다가 후불상조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었다. 이게 미리 가입해둔 게 없어서 당장 큰돈이 나가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사후 정산 방식이라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이것저것 추가되는 품목을 따지다 보면 금액이 300만 원에서 500만 원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물론 장례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국가유공자라고 해서 무조건 무료가 아니라 혜택을 챙겨 받는 과정이 꽤 번거로웠다. 서류 준비하고 보훈청 확인받고 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는 며칠 동안 잠을 거의 못 주무셨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마음이 안 좋았는데, 이런 게 어른들이 말하는 ‘산 사람의 몫’인가 싶었다.

국립묘지 안장 준비의 복잡함

할아버지를 어디에 모실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가족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이천국립호국원에 모시자는 의견과 산청호국원 이야기를 하는 친척분들 사이에서 조율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서울현충원은 이미 자리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아예 후보군에서 제외했다. 국립묘지에 안장 신청을 하려면 미리 서류를 챙겨야 하는데, 할아버지께서 평소에 국가유공자 증서를 어디에 두셨는지 기억이 안 나 한참을 헤맸다. 정왕공설묘지나 대전시립납골당 같은 대안도 언급되었지만, 결국 나라에 헌신하신 분이니 호국원으로 모시는 게 도리라는 의견으로 정리되었다. 화성하늘공원수목장 같은 곳도 깔끔해 보이긴 했는데, 역시나 국립묘지 쪽 서류 절차가 훨씬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장례 이후에 남은 묘한 기분

삼일장을 마치고 돌아오니 이제야 조금 실감이 난다. 장례 기간 내내 옆에서 도와주던 장례지도사분은 참 고마웠다. 내가 우왕좌왕할 때마다 조용히 다음 절차를 알려주셨는데, 만약 그분 없었으면 아마 중간에 한 번은 크게 당황했을 것 같다. 사실 장례를 치르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사람들의 위로도, 비용 처리도 아니었다. 그냥 할아버지가 안 계시다는 빈자리, 그리고 우리가 너무 무지했다는 자책감 같은 게 더 컸다. 보훈청에서 나오는 지원금이나 혜택 같은 게 사실 고인을 기리는 정성보다 중요할 리 없는데도, 막상 현실에서는 그런 숫자를 따지고 있는 내가 좀 밉기도 했다. 이제 모든 절차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집에 돌아와 보니 서류 뭉치와 몇 장의 영수증만 덩그러니 남았다. 정말 이게 다인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어 다행이라는 마음이 공존한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이 기억이 어떻게 남을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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