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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일로 장례용품을 챙기면서 느꼈던 묘한 기분

삼베수의와 영가옷을 직접 고르게 된 경위

며칠 전 갑자기 연락을 받고 허둥지둥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 평소에 상조 서비스 같은 건 남의 일처럼 생각하고 살았는데, 막상 닥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상조회에서 제공하는 패키지라는 게 있기는 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장례식장에서 제시하는 품목들 사이에서 삼베수의니 영가옷이니 하는 생소한 단어들을 마주할 때마다 이게 꼭 필요한 건지, 아니면 그냥 절차상 구색을 맞추는 건지 헷갈렸다. 처음에는 대충 아무거나 하려고 했는데, 옆에 있던 친척 어르신이 굳이 삼베가 아니라 한지수의도 괜찮다는 둥 여러 의견을 보태는 통에 더 고민만 깊어졌다.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대략 수백만 원 단위가 오가는 상황이라 그런지 다들 예민해져 있었다.

촘촘히 쌓여있던 영가옷에 대한 기억

장례용품점에 처음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진열장에 빼곡하게 쌓여있던 영가옷이었다. 예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문인들의 기록이나 사찰에서의 의식 때 보았던 그 낯선 물건들이 내 눈앞에 실물로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이게 정말 저승 가는 길에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남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장식인지 잘 모르겠다. 가격표가 붙어 있는 걸 보니 십만 원 단위부터 시작해서 생각보다 다양했는데, 품질이 딱히 다른 건지 아니면 단순히 천의 재질 차이인지 알 길이 없었다. 옆에서 상담을 도와주시는 분은 정성을 들이는 마음의 문제라고만 하시는데, 그 말을 듣고 나니 더 고르기가 어려워졌다.

장례식장 근처의 묘한 현실감

상조 서비스를 이용해도 결국 장례식장 내에서 추가로 구매해야 할 용품들이 꽤 많았다. 절복이라든지 간단한 제사 도구 같은 것들을 챙기는데 거의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중간에 잠시 커피를 마시러 나갔는데, 근처 가게 진열장에 영가옷과 부적 같은 것들이 같이 진열된 걸 보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죽음이라는 게 누군가에게는 일상이자 생업이 되는 풍경이 낯설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주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나중에 계산을 마치고 영수증을 보니 생각보다 지출이 꽤 컸다. 삼베이불이나 수의 같은 게 왜 이렇게 비싼지 따져 묻고 싶다가도, 결국엔 다들 그냥 조용히 넘어가는 분위기라 나도 말을 삼켰다.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찜찜함

모든 절차가 끝난 지금도 사실 무엇을 어떻게 선택했어야 옳았는지 잘 모르겠다. 천도재 때 영가옷을 소각장에 고이 사르고 왔는데, 그걸 태울 때 드는 기분이 뭐랄까, 시원섭섭하다기보다는 무언가 숙제를 끝낸 느낌에 가까웠다. 법당에서 들었던 독경 소리나 상조 용품들을 정리하며 느꼈던 피로감이 뒤섞여서 정리가 안 된다. 주변 사람들은 다들 ‘그 정도면 정성을 다한 거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내 마음 한구석에는 더 좋은 걸 해드리지 못한 건가 하는 아쉬움과, 반대로 굳이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했어야 했나 하는 냉소적인 의문이 동시에 든다.

다음번에는 다르게 생각하게 될까

나중에 다시 이런 일을 겪게 된다면 조금은 더 담담해질 수 있을까. 이번에는 장례지도사가 안내해 주는 대로, 혹은 남들이 다 한다는 방식으로 휩쓸려 다녔던 것 같다. 삼베수의가 아니더라도 조금 더 실용적인 선택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애초에 그런 형식적인 용품들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는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많은 시간을 장례용품점에 할애했는데, 정작 망자를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은 그만큼 부족했던 것 같아 조금 아쉽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고, 다시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영가옷 한 벌에 담긴 무게가 이 정도라면, 사람이 평생 짊어지고 사는 무게는 얼마나 되는 걸까 가끔 생각한다. 지금도 여전히 정답은 잘 모르겠다.

“갑작스러운 일로 장례용품을 챙기면서 느꼈던 묘한 기분”에 대한 4개의 생각

  1. 삼베수의니 영가옷을 소각장에 옮기는 그때의 기분이 시원섭섭함보다는 숙제 끝낸 느낌이었던 게 기억에 남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할 때, 단순히 의례적인 행동에 집중하다가 오히려 혼란스러워했던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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