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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를 차리지 않기로 결정하고 나서야 보였던 것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을 다 어떻게 감당하지’라는 겁부터 났던 것 같다. 평생 교회 권사님으로 사셨던 분이라 당연히 성대한 기독교 장례식장을 예약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장례지도사와 마주 앉으니 머릿속이 하얘지더라. 우리가족끼리만 조용히 보내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컸는데, 요즘은 무빈소 장례라는 게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그냥 그걸로 하기로 했다. 이게 흔히 말하는 가족장 형태인데,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리지 않고 발인까지 바로 진행하는 방식이다. 상조 회사에서 견적을 받았는데, 대략 200만 원 중반대에서 300만 원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예전에 들었던 큰 비용들과 비교하면 생각보다 저렴해서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정말 맞는 건지, 남들 눈에는 너무 휑해 보이는 건 아닌지 마음이 계속 복잡했다.

기독교식 장례와 무빈소의 묘한 간극

기독교 장례는 향을 피우지 않고 절을 하지 않는 게 기본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상조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설명을 듣다 보니, 무빈소라고 해서 예배를 아예 안 드리는 건 아니더라. 입관 예배나 발인 예배는 간단하게라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상조 회사 직원이 ‘종교가 없으신 분들도 무빈소를 많이 찾는다’며 표준 매뉴얼대로 진행하려고 하는 게 좀 어색했다. 우리는 분명 기독교식으로, 목사님도 모시고 간단히 예배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 과정에서 나오는 의전 방식이 너무 기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햄버거 세트를 주문하는 것처럼 ‘이거 빼고 저거 추가요’ 하는 느낌이랄까. 우리 가족에게는 평생 한 번뿐인 슬픔인데, 상조 직원에게는 그냥 오늘 처리해야 할 수많은 건 중 하나인 것 같아 씁쓸함이 밀려왔다.

장례식장 이용료가 빠지니 벌어지는 일들

빈소를 차리지 않으니 식당 운영도 안 하고 조문객 접대도 없었다. 이건 정말 편했다. 3일 내내 음식을 나르고 낯선 사람들에게 인사하며 영혼까지 털리는 경험을 안 해도 되니까.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불편함도 있었다. 당장 가족들이 쉴 공간이 없다는 거다. 입관 전까지 대기실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데, 그 적막함이 견디기 힘들었다. 보통 빈소가 있으면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소음이라도 있는데, 무빈소는 정말 적막 그 자체였다. 새벽 시간, 정수기 소리만 들리는 대기실에 앉아 있다 보니 ‘우리가 너무 정 없게 보내드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옆 건물 큰 장례식장에선 밤늦게까지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는데, 그 소리가 이상하게 부러워지기도 했다. 돈은 덜 들었지만, 그만큼 우리가 감내해야 할 심리적 무게가 따로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부고 문자와 현실적인 연락의 문제

장례를 알리는 것도 고민이었다. 빈소를 차리지 않으니 부고 문자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조문은 정중히 사양합니다’라는 문구를 넣을지, 아예 가족끼리만 장례를 치렀다는 사실을 사후에 알릴지 고민했다. 결국 지인 몇 분께는 직접 전화를 드렸는데, 대뜸 ‘그래도 얼굴은 봐야지 왜 그러냐’는 소리를 듣고 나니 진이 빠졌다. 무빈소 장례가 우리 가족에겐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남들에겐 설명하기 참 어려운 방식이라는 걸 깨달았다. 상조 서비스에 포함된 문자 발송 기능은 너무 사무적이라서, 결국 내가 직접 한 줄 한 줄 마음을 담아 썼다.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새벽에 앉아서 문장을 고치고 또 고쳤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의문들

장례를 마치고 화장터까지 다녀오고 나니 정말 모든 게 순식간에 끝난 기분이다. 3일 동안의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갔는데, 막상 집에 오니 텅 빈 거실이 너무 낯설었다. 우리가 선택한 장례 방식이 정답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돈과 시간을 아끼기 위한 변명이었을까? 주변에서는 다들 ‘요즘은 다들 그렇게 해’라고 말해주지만, 그게 마음의 짐을 덜어주진 못한다. 기독교적인 경건함을 지키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복잡한 절차가 싫었던 건지,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는 두 마음이 계속 싸우고 있다. 그냥 좀 더 곁에 있어 드리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영 편치 않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무리를 해서라도 빈소를 작게라도 차릴 걸 그랬나 싶다가도, 다시 생각해보면 그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어머니를 모셨을 생각을 하면 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결론이 나지 않는 이 불편한 마음이 앞으로도 꽤 오래갈 것 같다.

“빈소를 차리지 않기로 결정하고 나서야 보였던 것들”에 대한 3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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