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얼마 전 기초생활수급자였던 먼 친척 어르신의 장례를 돕게 되었다. 처음에는 막연히 구청에서 어느 정도 도와주겠지 싶었는데, 막상 닥치니 챙겨야 할 서류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주민센터 담당자분과 통화할 때마다 빠진 서류가 있다며 다시 연락이 올 때면 조금 진이 빠지기도 했다. 수급자 증명서부터 시작해서 사망진단서, 그리고 가족관계증명서까지. 평소에 이런 서류를 뗄 일이 거의 없던 나로서는 무인발급기 앞에서 서성이는 시간조차 길게 느껴졌다. 특히 장례비용 지원을 받으려면 장례지도사와 상의해서 항목별로 영수증을 꼼꼼히 챙겨야 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장례식장 사무실에 앉아 서류 봉투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내가 지금 사람을 떠나보내는 건지 서류 행정을 처리하러 온 건지 헷갈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무빈소로 결정하기까지의 망설임
경제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무빈소 장례를 선택했다. 사실 처음에는 빈소를 차리지 않는다는 게 마음 한구석에 계속 걸렸다. 한국 정서상 빈소 없이 바로 화장장으로 모시는 게 혹시나 고인께 소홀한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담을 받아보니 굳이 큰 규모의 장례식장을 빌려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무빈소는 약 200만 원에서 300만 원 선에서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일반적인 장례 비용이 수천만 원대까지 치솟는 걸 생각하면 그 차이가 꽤 컸다. 결국 실질적인 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결정했지만, 막상 조문객을 받지 않는 조용한 공간에 앉아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이게 맞는 방향인지,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지 스스로 계속 질문하게 되었다.
종교와 예절 사이의 아주 사소한 불편함
어르신께서 천주교 신자셨던 터라 장례 절차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천주교식 장례 예절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급하게 인터넷을 뒤져보기도 했다. 분향소에 향을 피우는 게 맞는지, 아니면 헌화만 해야 하는지 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인데 막상 현장에 있으면 당황스럽기 마련이다. 장례도우미분들이 계셨지만, 그분들도 바쁘게 움직이시니 매번 질문하기가 미안했다. 결국 성수를 뿌리고 기도하는 간단한 절차로 마무리했는데, 제대로 한 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저 형식적인 절차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을 위안 삼아 넘겼지만, 돌이켜보면 조금 더 챙겨드리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찝찝함이 남는다.
장례식장에서 보낸 시간의 무게
장례식장에서 머무는 동안 쉼 없이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여러 생각을 했다. 기초생활수급자 장례 지원을 받으려면 절차가 까다롭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직접 겪어보니 왜 사람들이 지레 겁을 먹는지 알 것 같았다. 행정적인 도움은 분명히 있지만, 그 문턱을 넘기까지의 에너지가 상당했다. 특히 유골 수습 후에 어디에 모실지 결정하는 문제도 남았다. 공영장례로 치러진 분들이 유골을 뿌린 곳조차 알기 어렵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서, 나중에 어르신을 뵈러 가고 싶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지금 당장은 모든 절차가 끝났지만,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남아있다. 잘 보내드린 건지, 아니면 그냥 서류를 처리하듯 바쁘게 움직이기만 한 건지 잘 모르겠다.
마무리되지 않은 질문들
모든 게 끝난 지금도 장례 비용 영수증 뭉치를 보면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나눔플러스상조 같은 곳에서 상담을 받으며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였지만, 여전히 무연고 장례나 기초생활수급자 장례에 관한 공적 지원이 더 촘촘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슬픔보다 행정적 처리에 쏟아야 하는 에너지가 너무 크다. 다음에 또 이런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지금보다 조금 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 같다. 그저 다음에는 조금 더 마음 편히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만 남는다.

무빈소 장례 선택하신 게 정말 현명한 판단 같아요. 빈소 없이 조문객을 맞이하지 못하는 상황이 마음 한편에 든 어떤 불편함일지 짐작이 갑니다.